
문화일보 박동미 기자가 쓴 기획의 말이 나는 괜히 좋다.
그가 내 블로그를 보게 될 리 만무하지만은 나는 마음에 든 그 글을 괜히 따라 써보고자 한다.
밑줄 친 부분을 읽을 때 소름 돋게 좋았다. 이유는 나에게서 비롯된 것들이라 홀로 간직하기로.
*7쪽
여기에 실린 소설들은 2023년 가을부터 2024년 봄까지
문화일보에 연재된 것들이다.
'소설, 한국을 말하다'는 당시 시리즈 제목이었고 매주 새로운 작가가 4000자 안팍의 짧은 소설을 한 편씩 공개했다.
엽편, 콩트, 미니픽션 등의 이름이 있지만
연재를 진해하는 동안 나는 저 제목이 좋아서
'소설, 한국을 말하다'라고 늘 길게 불렀다.
보도가 아닌 '이야기'로 한국 사회와 문화, 그리고 한국인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취지와 그 형식까지,
그보다 더 적확하게 아우르는 표현은 없었다.
또, 나는 자주 말하고 다녔다. 일터란 좋은 것보다 싫은 걸 더 많이 해야 하고,
이상과 현실의 어그러짐을 계
*8쪽
속 목격하는 장소다. 그런 애증의 관계에도 불구하고,
'우리, 이런 거 해' 하고 떠벌리고 싶은 일. '야, 너도 좀 읽어봐'라고
권하고 싶은 일이었다. 즉, 싫은 것보다 좋은 게 훨씬 많고, 이상과 현실이 착 맞물렸던 업무였다.
직장인의 호사였다. 게다가 사람들이 문학과 멀어지고, 그래서 신문과 소설도 멀어진 시대가 아닌가. 문학·출판 담당 기자로서 자발적 열정이 샘솟았던, 드물고 귀한 프로젝트였다.
주제와 소재, 이야기의 키워드는 필자들이 자유롭게 선택했다. 다만, '한국'이라는 시공간을 함께 지나는, '지금, 여기'의 '우리'를 드러내야 한다는 전제가 있었다. 애초 인간과 사회를 탐구하며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게 소설이 하는 일 중 하나고, 소설가들은
늘 인간의 마음을 유영하고 있기에
그 과정은 크게 어렵지 않았다.
작가들은 신간 인터뷰와 같은 기사가 아니라
소설 그 자체로 신문 독자를 만난다는 것을 신선하게 받아들였고, 반가워했다.
하고 싶은 말, 담고 싶은 풍경,
파헤쳐볼 만한 지점을 빠르게 간파했고, 그것은 각각 오롯한 세계로 펼쳐졌다.
*9쪽
AI, 사교육, 고물가, 오픈런, 덕질, 번아웃, 반려동물, 자연인, 거지방, 고물가, 다문화 가족, 새벽 배송, 중독…
우리가 아는 세계는, 우리가 아는 것보다 다채로웠다.
그것은 작은 단어에서 뻗어나가기도 했고 처음부터 커다란 숙제를 품고 있기도 했다.
그래서 소설을 읽는다는 건,
당면 과제를 재확인하는 일이기도 하고
흔한 풍경에서 흔치 않은 감각을 경험하는 일이기도 하다.
또, 때론 미처 자각하지 못한 존재나 현상을 알아차리게 한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이런 자문에 도달하는 것이다.
'우린 지금 어디에 있고 어디를 향해 가는가.'
사실의 힘을 믿고 또 매일 체감하는 직업이지만, '소설, 한국을 말하다'를 통해
소설의 힘과 매력을 새삼 깨달았다.
어떤 사실은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보다 이야기로 만들어졌을 때 더욱 명징해진다는 것을,
그래서 그 필요와 가치가 더 잘 전달된다는 것을.
그러니 보이는 것과 보고 싶은 것만 보려는 세태에도 아랑곳 않고,
보아야 할 것을 보여주는 일에 성실하게 복무하는 이들―우리의 작가들! ―은 얼마나 소중한가.
<필사자의 짧은 생각>
2013년 6월에 입사를 했으니
적어도 2013년 7월부터 나는 기자였다.
나도 한때는 기자였다.
하지만 불미스러운 일로 나는 기자의 일을 그만두어야 했고,
내가 좋아하는 일을 그만둠으로 인해 긴 시간 방황해야 했다.
방황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아니. 다시 일을 그만둔 그때로 돌아간다 해도 나는 또 방황했을 것 같다.
나는 나에게 다시 솔직해지기로 했다.
나는 글이 좋다.
글을 읽는 것도, 글을 쓰는 것도 좋아한다.
나는 기자라는 일을 그만둔 이후
영화사에서 다시 또 글쓰는 일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일은 나에게 맞지 않았다.
정직하고 정의로운 글을 쓰고 싶은 나의 욕구가 하나도 충족되지 않는 기분이 들었다.
재미없는 영화를, 재미가 있다고 거짓말로서 포장해야 하는 일이 버거웠다.
스스로 가치 없는 일에 시간을 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나아가 이런 것도 제대로 해내지 못할 거면 아예 글을 쓰지 말아야 한다는 자기 비난에 빠졌다.
그 후 글을 쓰는 것과 거리가 있는 다른 일을 하며 지냈다.
그리고 그 일을 5년 가까이 지속해오다 최근에 그만두었다.
가만히 서서 뒤를 돌아보니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그만둔 이후부터 괜한 투정과 억지와 반항심으로
나를 속이면서 인생을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다시 다짐했다.
그냥 내가 좋아하는 일 하면서 살면 좋잖아.
꼭 성공해야 한다는 강박을 이불처럼 뒤집어쓰지 말고.
몇 군데의 회사에 입사 지원서를 냈다가 합격 통지서를 받아들었을 때처럼 또 애매하게 좋아하지 말고.
나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그냥 그래서 이렇게라도 작게라도 소박하게라도
글이라는 것을 쓰며 살고 싶었다.
그리고 그러고 싶은 마음을 이렇게라도 실현하기로 마음먹었다.
여전히 나는 내가 하는 일에 확신이 없지만 그래서 내가 못미덥지만
나의 마음 저 깊은 곳에 살고 있는 나의 마음은 이미 알고 있다.
지금 내가 하는 행동이 나를 기쁘게 하는 행동이란 사실을.
나를 믿고 말고와 상관 없이 나의 마음은 현재 기쁘다.
그래서 나는 이 하얀 화면 안에서 내가 숨을 들이마시고 내쉴 때마다 흩어져 나오는 글자들을 모아
이 분홍색의 먹물을 입혀 옮겨 두려고 한다.
나는 내가 원하는 대로 살 권리가 있다.
내가 원하는 대로 살고 그 행동을 책임질 능력이 나에겐 있다.
아무튼, 내가 좋아하는 그리고 부러워하는 기자라는 직업을 뇌에 새기고, 계속해서 글을 쓰며 살아가도 되는
사람들을 부러워하는 마음을 가득 느끼며, 이번 필사를 마쳤다.
짧은 단상을 덧붙이려고 하였는데
쌓여있던 불만이 크고 넓어서 그런가 말이 짧게 잘 끝나지 않는다.
아무쪼록 이렇게 소설을 필사하는 일이 나에게 큰 위안이 된다는 사실을 새삼 느낀다.
느끼고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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