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문학 ]

이 세상의 키다리들과 그들이 만들어 낸 바닥의 그림자 안에 가려져 있을 민서에게.

오토노미 2025. 6. 21. 16:08

인주는 자살하지 않았다.
결코, 죽음 따위로 그 아이를 버리지 않았다.
민서는 자랄 것이고 언젠가 그 책을 읽을 것이다.
저 사람에게는 그런 일 따위는 아무것도 아닌가?
진실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란 말인가?

-위의 책은. 450킬로미터(한강)-

그러니까 나는 이 문구를 읽으면서
내가 목격했던
내 손 끝에 살갗이 닿았전 수많은 민서에 대해 떠올려야만 했다.

나는 민서들을 놓치기 싫었다.
그래서 늘 싸웠다.

민서들 중에는 내가 아는 사람도 있고
내가 모르는 사람도 있고
내가 얄팍하게 아는 사람도 있고
나와 거의 비슷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는 안다.

나는 그러니까
그런 수많은 강석원 선생님-에 해당하는 사람들과 싸워야 했다.

언젠가는.
나는 혹시 싸우기 위해서 태어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그러기엔 나는 사회적으로 가진 것이 없고
가졌다가도 흘려 보낸 얄팍한 것들이 많아서
으레 그런 싸움에서 지곤 했던 것 같다.

이를테면 좋은 학벌이나 유명 기업의 구성원이었다는 사실 등등.

나에겐 그런 것들이 부대꼈다.

그냥 내 이름 세 글자만으로 세상 속에 나를 세워두고 싶었달까.

여전히 그 작업은 진행 중이나.
나는 이렇게 때때로 글을 읽는 것만으로
날카로운 것에 찔린 사람처럼 휘청거리고
갈피를 잃어버리고
작게 소용돌이치고
작게 분노하는
안타깝고 나약한.
아니 나약하지만은 않은
그러나 나약한 사람으로 비춰질 지도 모르는.
그런 우려를 머금고 있는 사람-
따위로 분류돼버리고 만다.

젠장.


글을 읽다가
수월하게 끝까지 읽지 못하는 이유는
그러니까 이런 반응성, 예민한 감각 때문이다.


이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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